[황서형 변호사 칼럼] 개인회생 12만 건 시대를 바라보며
작성자
hlmaster23
작성일
2025-12-18 15:44
조회
195

거리에는 연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법조계의 시계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돌아가고 있다. 2025년의 끝자락에서 받아 든 성적표는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원 사법월간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무려 12만 3,848건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10만 8,362건) 14.3%나 급증한 수치로, 연말까지의 수치를 합산하면 역대 최대 규모가 확실시된다.
많은 전문가가 이러한 급증의 원인을 고금리와 고물가가 장기화한 '구조적 경제 불황'에서 찾는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급격히 불어난 이자와 생활비 부담은 가계의 상환 능력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실무에서 수많은 채무자를 마주하는 변호사의 시각에서, 나는 이 통계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원인을 이야기하고 싶다. 바로 '법률 서비스 접근성의 향상'이다.
과거에는 빚을 지면 '야반도주'를 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것이 채무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복잡한 법률 용어와 높은 변호사의 문턱은 그들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온라인을 통해 법률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과정이 훨씬 수월해졌다. 역대 최대의 신청 건수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실패를 법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사람들은 숨기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빚을 갚고 다시 일어서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도산 제도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고 우려한다.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라는 대원칙 아래, 도산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시선이다. 그러나 통계는 이러한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서울회생법원의 조사에 따르면 파산의 원인 중 도박이나 사치 등 낭비 요인은 불과 0.37%에 그쳤다. 반면, 근로소득 감소(47.7%)와 사업 실패(44.2%)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서울시복지재단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개인회생을 신청한 만 29세 이하 청년의 첫 채무 발생 원인의 70%가 생활비 마련이었으며, 채무가 늘어난 사유는 부채 돌려막기와 고율의 이자, 그리고 갑작스러운 실직과 이직이 대부분이었다.
법원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대부분 제도를 악용하려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으나 예상치 못한 실직으로, 혹은 치열하게 사업을 운영했으나 경기 침체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지 못한, '선량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들이다. 이들에게 도산 제도는 빚을 떼먹는 수단이 아니라, 경제적 사망 선고를 막고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게 돕는 유일한 산소호흡기다.
제도가 이들을 받아주는 것은 단순한 관용이 아니다. 채무자가 경제 활동 인구로 복귀하여 세금을 내고 소비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 전체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산 제도는 채무자를 위한 제도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지키는 안전장치다.
다사다난했던 2025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개인회생 역대 최대 신청'이라는 기록은 우리 경제가 겪은 고통의 크기를 말해주지만, 동시에 그만큼 많은 사람이 다시 시작할 용기를 냈다는 희망의 증거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내년에는 법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주저 없이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손을 잡고 일어선 수많은 채무자가 경제적 재기에 성공하여 우리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 지금의 시련을 겪고 있는 모든 분의 2026년이 밝고 희망찬 미래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원한다.
[법률 칼럼] 황서형 변호사
출처: https://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58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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